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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친구
누군가에게 끔찍한 일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왜 가장 먼저 책임질 사람을 찾으려고 할까요. 물론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진실을 알아내려는 마음보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서는 것 같습니다. 영화 《죄 많은 소녀》는 바로 그 불편한 감정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여고생 경민이 실종되면서 시작됩니다. 경민과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 친구 영희가 의심을 받게 되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점점 영희에게 집중됩니다. 경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밝혀지기도 전에 영희는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한 사람처럼 취급받습니다. 친구들과 학교, 그리고 경민의 가족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영희를 압박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희가 완벽하게 착한 학생인지, 평소에 다른 사람과 갈등이 없었는지가 아닙니다. 누군가와 다투었다는 사실과 그 사람에게 일어난 불행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이 두 가지를 쉽게 연결합니다.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이유,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 사건 뒤에 보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의심은 점점 확신처럼 변합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 영화 속에서만 벌어지는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도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사실관계가 충분히 밝혀지기 전에 특정한 사람을 지목하고 비난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여러 사람이 같은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제기됐던 의문이 어느새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의심이 한 사람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의심받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분명히 알지 못한 채 끊임없이 해명해야 합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사람들은 이미 믿고 싶은 이야기를 정해놓았을 수 있습니다.
진실을 찾는 일과 누군가를 범인으로 정해놓고 몰아가는 일은 다릅니다. 《죄 많은 소녀》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바로 그 차이를 우리가 얼마나 쉽게 잊어버리는가에 있다고 느껴집니다.
원망할 대상
사람은 견디기 어려운 일을 겪으면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합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누군가 막을 수는 없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도 없고, 누구에게 물어봐도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원망할 대상이라도 있으면 마음이 조금 덜 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큰 불행을 겪었을 때 누군가를 탓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원망할 사람이 있으면 복잡한 슬픔에 방향이 생깁니다.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면 적어도 그 사람을 미워할 수는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도 탓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모든 질문이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다면 달라졌을까. 내가 무언가를 놓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은 사람을 끝없이 괴롭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책감이나 무력감을 견디기 어려울 때, 그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죄 많은 소녀》에서 경민의 엄마가 영희에게 보이는 태도 역시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은 쉽게 헤아릴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 자체를 함부로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이 아무에게나 책임을 물을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저는 한 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슬픔을 이해하는 것과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별개라는 점입니다. 아무리 큰 불행을 겪었더라도 다른 사람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는 말과 행동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더구나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원망하기 시작하면 개인의 감정은 집단의 확신으로 변하기 쉽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의심이었는데, 어느 순간 모두가 같은 말을 하니까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사람을 몰아붙이는 동안 정작 처음의 슬픔과 사건의 진실은 뒤로 밀려납니다.
저는 이것이 《죄 많은 소녀》에서 가장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진실일까요, 아니면 마음껏 미워할 수 있는 누군가일까요. 두 가지는 비슷해 보여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죄인이 필요한 사람들
《죄 많은 소녀》라는 제목을 다시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영화 속에서 영희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분명한 증거보다 사람들의 의심과 감정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제목은 이미 영희를 죄가 많은 소녀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 제목이 영희에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죄가 있는지를 말한다기보다,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죄를 영희에게 떠넘기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고 봅니다.
경민이 사라진 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영희를 의심합니다. 가족은 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 하고, 학교는 사건을 수습해야 하며, 친구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실과 감정 사이에서 흔들립니다. 각자의 입장은 다르지만 결국 영희라는 한 사람에게 질문과 비난이 집중됩니다. 그리고 영희는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저는 여기서 의심받는 사람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누군가를 의심하는 사람은 의문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심받는 사람은 자신이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끝없이 설명해야 합니다. 아무리 해명해도 사람들은 그 말마저 거짓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백을 증명할 방법이 사실상 사라집니다.
더구나 영희 역시 친구의 실종과 죽음 앞에서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날 다른 행동을 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후회와 죄책감이 있다고 해서 실제로 그 사건에 책임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은 아무 잘못이 없어도 불행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탓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서 특히 생각해 볼 부분은 바로 그 차이입니다. 실제로 저지른 잘못, 스스로 느끼는 죄책감, 다른 사람들이 떠넘기는 책임은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큰 불행 앞에서는 이 세 가지가 쉽게 뒤섞입니다. 누군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죄가 있으니 저렇게 행동한다고 단정하기도 하고, 반대로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는 이유로 양심이 없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결국 어떤 반응을 보여도 의심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집니다.
저는 사람이 힘든 일을 겪으면 원망할 대상을 찾는다는 생각을 여전히 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동안에는 자신의 슬픔이나 무력감을 잠시 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정말 책임져야 할 사람인지 확인하지 않는다면, 한 사람의 불행을 견디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리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죄 많은 소녀》가 남기는 질문은 단순히 영희가 죄인인가 아닌가에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죄인이라고 부르기 전에, 정말 그 사람의 잘못을 확인했을까요? 아니면 우리의 괴로움을 대신 짊어질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요?
저는 이 질문 때문에 《죄 많은 소녀》가 단순한 여고생 실종 사건을 다룬 영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이 슬픔을 견디는 것보다 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쉬운 선택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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