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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범인

영화 《부당거래》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범인을 잡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범인을 만들어낸다는 설정입니다. 범죄영화라면 보통 경찰이 범인을 쫓고, 관객은 누가 범인인지 궁금해하며 영화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그 기대를 뒤집어버립니다.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는 어느 순간 중요하지 않아 집니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범인이 필요하고, 수사를 끝냈다는 결과가 필요할 뿐입니다.

황정민이 연기한 최철기는 경찰 조직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면서도 승진에서는 번번이 밀리는 인물입니다. 경찰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받아 온 그에게 중요한 사건을 해결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그 기회에는 처음부터 잘못된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진범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마무리할 범인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설정이 무서운 이유가 최철기를 처음부터 특별히 악한 사람으로만 그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기 일을 잘하고 싶고, 능력을 인정받고 싶고, 더 높은 자리에도 올라가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런 욕망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일을 저지를 권리까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겪은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나도 그동안 손해를 봤으니 이번 한 번쯤은 괜찮다고 생각하거나,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 나만 원칙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최철기의 선택도 그런 마음과 완전히 동떨어져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범인을 잡는 경찰이 범인을 만들어내는 순간, 그가 그동안 쌓아온 능력과 억울함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해 주지 못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출세할 기회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빼앗기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당거래》는 그래서 범죄를 해결하는 이야기보다 범죄를 해결하는 척하는 사람들이 더 무서운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거창한 악의가 아니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사실이 더욱 씁쓸하게 남습니다.


세 남자의 거래

《부당거래》의 재미는 황정민, 류승범, 유해진이라는 세 배우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는 데 있습니다. 황정민의 최철기는 경찰이라는 직업과 수사권을 가지고 있고, 류승범의 주양은 검사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해진이 연기한 장석구는 돈과 인맥을 움직일 수 있는 건설업자입니다. 세 사람은 각자 가진 것이 다르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방이 가진 힘을 필요로 합니다.

특히 류승범이 연기한 주양은 볼수록 얄미운 인물입니다. 말투와 행동에는 자신감이 넘치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을 압박하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최철기가 거칠게 밀어붙이는 사람이라면 주양은 상대의 약점을 잡고 자신의 유리한 위치를 확인시키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둘이 부딪칠 때마다 누가 더 옳은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누가 상대를 더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겨루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유해진의 장석구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찰이나 검사처럼 공식적인 권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돈과 인맥을 통해 그 권력과 거래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세 사람을 나란히 놓고 보면 법을 집행하는 힘과 돈으로 움직이는 힘이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세 사람이 서로를 진심으로 믿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필요할 때는 손을 잡지만 상황이 불리해지면 언제든 상대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협력하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각자의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세 배우가 함께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총격이나 추격 장면과는 또 다릅니다.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누가 누구의 약점을 쥐고 있는지, 이번에는 누가 우위를 차지할지 궁금해집니다.

저는 이런 관계를 보면서 돈이 많은 사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정보를 가진 사람 중 과연 누가 가장 강한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그 힘이 계속 바뀝니다. 오늘 상대를 협박하던 사람이 내일은 자신의 비밀 때문에 협박받는 처지가 됩니다.

결국 세 사람 모두 자신이 상대를 이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의 비밀에 발목을 잡힙니다. 서로를 믿지 않으면서도 서로 없이는 빠져나올 수 없는 관계. 그것이 《부당거래》에서 세 배우의 연기 대결이 유난히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진실보다 중요한 것

《부당거래》에서 가장 씁쓸한 것은 결국 누가 살아남고 누가 무너지는지를 지켜보는 일입니다. 사건이 복잡해질수록 처음의 연쇄살인 사건은 뒤로 밀려나고, 사람들은 자신의 비밀을 지키는 데 더 바빠집니다. 분명 사건의 출발점에는 억울하게 희생된 아이들이 있었는데, 정작 사건을 해결한다는 사람들의 관심은 자신의 자리와 이익으로 옮겨갑니다.

저는 이 부분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가짜 범인을 만드는 일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출세를 원하고, 누군가는 사업을 지키려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 사정을 모두 합친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최철기를 생각하면 처음에는 조금 안타까웠다가 나중에는 그 마음이 사라집니다. 실력이 있어도 배경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분명 억울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억울함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순간, 그는 자신을 차별했던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지 묻게 됩니다.

여기서 저는 사람이 권력을 갖게 되는 것보다 권력을 갖기 위해 무엇을 포기하는지가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철기가 포기한 것은 단순한 원칙 하나가 아닙니다. 자신이 경찰로서 지켜야 했던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었습니다.

영화의 결말이 더욱 씁쓸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잘못된 거래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대가를 치르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책임에서 멀어집니다. 저는 원래 영화에서 잘못한 사람이 제대로 벌 받는 결말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런 마무리가 더욱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답답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보여주려던 현실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실제 세상에서도 잘못의 크기와 벌의 크기가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힘없는 사람은 작은 잘못에도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지만, 힘 있는 사람은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빠져나갈 방법을 찾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당거래》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제목이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경찰과 검사, 사업가 사이에서 오간 거래만 부당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인생과 진실까지 거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가장 부당했습니다.

결국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거칠게 협박하는 사람도, 높은 자리에서 명령하는 사람도 아닐지 모릅니다. 잘못된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그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믿는 사람.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진실은 점점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부당거래》를 다시 떠올리면 세 배우의 연기 대결은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웃고 긴장하며 영화를 따라간 뒤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한 가지 질문입니다.

정의를 지켜야 할 사람들이 진실을 거래하기 시작한다면, 힘없는 사람은 대체 누구를 믿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