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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포기한 미소, 정말 행복했을까?

영화 《소공녀》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한 여자, 가난하지만 자유롭게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 미소를 설명하는 말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영화를 보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미소가 과연 행복할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삶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18년 개봉한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는 이솜이 연기한 미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미소는 하루하루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위스키 한 잔과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 한솔과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생활비 부담이 커지자 미소는 집을 포기하기로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줄이는 대신 월세를 내지 않는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독특하고 당당한 선택처럼 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담배나 술부터 줄이고 집을 지키려 할 텐데, 미소는 정반대로 행동하니까요. 영화는 이런 미소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삶의 우선순위에 질문을 던집니다. 반드시 집이 있어야 행복한 걸까? 남들처럼 살아야 제대로 사는 걸까?

그런데 저는 미소가 짐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서는 모습이 자유로워 보이기보다 서글펐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선택한 일이라 해도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문제입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지친 몸을 눕힐 공간,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곳, 마음이 복잡할 때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장소가 사라진다는 뜻이니까요.

미소는 예전에 함께 음악을 하던 친구들을 찾아가며 잠잘 곳을 구합니다. 하지만 친구들도 저마다 사정이 있습니다. 누구는 결혼생활에 지쳐 있고, 누구는 경제적인 문제를 안고 있으며, 누구는 겉으로 보기에는 번듯한 삶을 살지만 마음속에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미소는 그들의 집을 방문하면서 각자의 삶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여기서 영화는 집과 직장을 가진 사람들도 반드시 행복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실이 미소의 선택을 더 행복한 선택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도 불행이 있다는 것과 내가 선택한 삶이 행복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미소가 좋아하는 것을 지키려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집을 포기하면서까지 지켜야 했던 그 작은 즐거움들이, 집을 잃으면서 생긴 불안과 외로움보다 정말 컸을까요?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저는 이 질문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습니다.

 


자유와 불안 사이, 남의 집에서 느끼는 서글픔

《소공녀》에서 가장 마음이 쓰였던 부분은 미소가 친구들의 집을 찾아다니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랜 친구를 만나고 옛 추억을 나누는 일이라면 즐거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과 그 집에서 잠을 자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남의 집에서 지내다 보면 신경 쓰이는 일이 생깁니다. 언제 씻어야 할지, 어느 정도까지 편하게 행동해도 되는지, 집주인이 불편해하지는 않는지 살피게 됩니다. 상대가 직접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아도 괜히 눈치가 보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친구에게도 가족이 있고 자기만의 생활이 있다면 오래 머무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미소는 친구들의 집을 옮겨 다니면서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마주합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이는 삶에도 저마다의 고민이 있고, 집이 있다고 해서 그 안에 웃음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도 아마 그런 현실일 것입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서 마음까지 편안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여기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집이 있고 직장이 있는 사람들도 불행한 순간이 있다는 사실이 왜 그들이 가진 안정의 가치를 낮추는 이유가 되어야 할까요?

직장생활이 힘들다고 해서 매일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상사 때문에 속상한 날도 있지만 동료와 웃으며 점심을 먹는 날도 있습니다. 월급날이면 조금 여유가 생기기도 하고, 주말을 기다리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집에서도 가족과 다투는 날이 있지만 함께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며 웃는 시간도 있습니다.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마치고 자기 침대에 누워 잠드는 평범한 저녁이 큰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순간들이 결코 하찮은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행복은 그런 것들이 아닐까요?

물론 미소에게도 즐거운 순간이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위스키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 그녀에게는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즐거움과 안정감은 서로 다른 감정입니다. 잠깐의 즐거움이 있다고 해서 내일 어디에서 잠을 자야 할지 고민하는 불안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미소가 남들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저는 그 말에도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자유롭다는 것과 불안하지 않다는 것은 다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더라도, 그 선택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이 흔들린다면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특히 누군가의 호의에 기대어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 제게는 가장 서글펐습니다. 친구가 선뜻 문을 열어주면 고맙겠지만, 언제까지나 그 문이 열려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내일도 머물러도 되는지 묻는 일조차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집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월세를 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내 생활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공간 하나가 없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미소가 자유를 얻었다기보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너무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녀가 짐을 들고 떠돌던 모습이 마음에 남았던 이유입니다.


평범한 삶의 행복,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매일매일 행복하기만 한 삶이 가능할까요?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싫은 일은 전혀 하지 않고, 경제적인 걱정도 없고,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을 일도 없는 삶이 과연 존재할까요?

저는 그런 삶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좋은 집에 살아도 걱정거리는 생깁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하기 싫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도 다투는 날이 있고, 혼자 살면 자유롭지만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결국 어느 쪽을 선택하든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모든 불편함을 없애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이 있어도 살아갈 만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직장도 있고 집도 있지만 가끔 불행한 사람이, 집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돈을 쓰는 사람보다 반드시 덜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게는 전자의 삶이 더 낫습니다. 직장에 가기 싫은 날도 있겠지만 일을 마치면 돌아갈 집이 있고, 경제적으로 빠듯한 달도 있겠지만 다음 달을 계획할 수 있는 안정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정감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특별한 성취도 아닙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할 때, 그리고 밤에 하루를 마무리할 때 마음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안정된 삶을 선택했다고 해서 자신의 취향이나 꿈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좋아하는 것을 조금씩 즐기면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형편이 어려우면 당분간 줄였다가 여유가 생겼을 때 다시 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타협을 두고 남들이 정한 기준에 굴복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지금 당장의 즐거움을 조금 미루는 것이 앞으로 더 많은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선택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미소의 삶이 틀렸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군가에게는 안정된 집보다 자신의 취향을 지키는 일이 더 절실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저는 그 선택을 무조건 멋지고 행복한 삶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미소가 감당해야 했던 불안과 불편함 역시 그녀의 삶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소공녀》의 좋은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고 모든 관객이 미소를 부러워하거나 그녀의 선택에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미소와 다른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자유보다 안정이 더 소중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집이 있다고 매일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집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덜 불안한 날들이 있습니다. 직장이 있다고 늘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을 통해 내일을 준비할 수 있다는 안도감도 있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있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은 삶은 아닙니다.

우리는 힘든 하루를 보내다가도 맛있는 저녁 한 끼에 기분이 좋아지고, 속상한 일이 있다가도 누군가의 다정한 말 한마디에 웃습니다. 저는 그런 작은 행복들이 쌓여 평범한 삶을 지탱한다고 믿습니다.

《소공녀》의 미소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집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미소의 입장이었다면 좋아하는 것들을 조금 줄이더라도 돌아갈 집을 지켰을 것 같습니다.

완벽하게 행복한 삶보다, 가끔 불행해도 마음 놓고 돌아갈 곳이 있는 삶.

저에게는 그것이 더 큰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