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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파티드와 닮았지만 달랐던 잠입
《신세계》를 다시 떠올리다 보니 얼마 전 본 《디파티드》가 생각났습니다. 경찰이 범죄조직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간다는 설정부터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두 영화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보고 나면 제가 느낀 감정은 꽤 달랐습니다. 《디파티드》에서는 누가 먼저 상대의 정체를 알아낼지가 가장 긴장됐다면, 《신세계》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이자성이 과연 어느 쪽 사람인가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이자성은 경찰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골드문 조직원으로 살아왔습니다. 경찰에게 정보를 넘기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조직에서는 정청의 오른팔로 인정받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경찰이 진짜 모습이고 조직원은 임무를 위해 만들어낸 가짜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구분이 점점 애매해집니다. 몇 년을 함께 먹고 마시고 위험한 순간을 넘긴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순히 연기였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부분이 재미있었습니다. 사람은 신분증에 적힌 직업만으로 자신의 편을 결정하며 살아가지는 않으니까요. 나를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과 위험한 순간에도 나를 자기 사람이라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은 어느 쪽으로 움직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정청이 속한 곳은 범죄조직이고 그것을 미화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동안 이상하게 경찰보다 정청과 자성의 관계에 더 마음이 갑니다. 《신세계》는 경찰이 조직에 잠입하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사람이 어디에 속한다고 느끼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정청과 자성, 누가 진짜 내 편인가
제가 《신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인물은 황정민이 연기한 정청입니다. 처음에는 거칠고 웃기기도 하고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조직폭력배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정청이 자성을 대하는 태도가 묘하게 마음에 남습니다. 특히 정청이 자성의 정체를 의심할 만한 상황에서도 두 사람 사이에는 단순한 조직의 상하관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보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저도 ‘자성에게 진짜 자기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반대로 경찰 강 과장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자성은 오랫동안 위험을 감수하며 경찰의 임무를 수행했는데 이제 그만두고 싶다고 해도 쉽게 놓아주지 않습니다. 자성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보다 작전의 성공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물론 경찰의 입장에서는 거대한 범죄조직을 통제하기 위한 작전이었겠지만, 자성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경찰인지 필요할 때 이용되는 도구인지 혼란스러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저는 선과 악을 단순하게 나누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경찰이라고 무조건 따뜻하고 정의로운 것도 아니고, 범죄자라고 인간적인 감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법적으로 어느 쪽이 옳은지는 분명하지만 사람이 느끼는 의리와 배신은 그렇게 간단하게 나뉘지 않습니다. 나를 옳은 길에 세워놓은 사람이 반드시 내 편인 것은 아니고, 잘못된 길에서 만난 사람이 오히려 나를 진심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 그 모순 때문에 자성의 갈등이 더 이해됐습니다.
그래서 정청과 자성의 관계는 단순한 의리로만 보기에는 조금 더 복잡하게 느껴졌습니다. 정청이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자성에게는 적어도 자신을 사람으로 대했던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총이나 칼보다 내가 믿었던 조직이 나를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선택한 세계
저는 원래 영화에서 선과 악의 결말이 어느 정도 분명한 것을 좋아합니다. 나쁜 일을 한 사람은 대가를 치르고, 끝까지 견딘 사람에게는 무언가 돌아오는 결말이 마음이 편합니다. 그런데 《신세계》는 그런 기대를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뒤집습니다. 자성은 경찰로 돌아가 모든 것을 정리하는 대신 결국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았던 세계를 선택합니다.
처음 봤을 때는 ‘결국 자성도 조직폭력배가 된 건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곱씹어보면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이 변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경찰은 계속 자성을 조직으로 밀어 넣었고, 자성이 빠져나오려고 할 때마다 다시 붙잡았습니다. 반대로 조직에서는 오랜 시간을 보내며 실제 인간관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성이 마지막에 선택한 것은 새로운 세계라기보다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이 살아오고 있던 세계를 인정한 것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지점에서 《디파티드》와의 차이도 크게 느껴졌습니다. 《디파티드》를 보면서는 거짓 신분으로 살아가는 두 남자 중 누가 살아남고 누가 정체를 들킬지가 궁금했습니다. 반면 《신세계》에서는 자성이 살아남느냐보다 살아남은 뒤 누구로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잠입 소재인데도 보고 난 뒤 남는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젊은 시절 자성과 정청의 모습이 나오면서 두 사람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 장면을 보고 나면 정청의 죽음과 자성의 선택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임무 때문에 시작된 관계였을지 몰라도 함께 보낸 시간까지 전부 가짜였던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서 시작했느냐보다 오랜 시간 누구와 살아왔고, 누가 자신을 믿어주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신세계》를 단순한 조폭 영화나 잠입 경찰 영화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결국 한 사람이 두 세계 사이에서 오래 흔들리다가 자신의 자리를 선택하는 이야기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지막의 자성을 보면서 완전히 잘못됐다고만 말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 불편한 마음이야말로 제가 《신세계》를 재미있게 봤던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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