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줄거리

1954, 연방보안관 테디 다니엘스는 동료 척과 함께 외딴섬 셔터 아일랜드로 향합니다.

이 섬에는 중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들을 격리하는 병원이 있습니다.

세 아이를 익사시킨 혐의로 수감돼 있던 환자 레이첼 솔란도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신고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 삼엄한 경비, 잠긴 병동까지 생각하면 탈출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레이첼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테디는 병원 관계자들을 하나둘 심문하지만 이상하게도 누구 하나 속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의사와 직원들은 무언가를 알고 있으면서도 감추는 것처럼 보이고, 테디가 중요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분위기는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사실 테디가 이 섬에 온 데에는 실종 사건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불법적인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혹을 품고 있습니다.

동시에 화재로 세상을 떠난 아내 돌로레스의 기억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폭풍우까지 몰아치면서 섬은 완전히 고립되고 테디의 두통과 환각은 점점 심해집니다. 현실이라고 믿었던 장면에 의심이 생기기 시작하고, 기억과 환상이 뒤섞이면서 관객 역시 무엇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워집니다.

특히 테디가 등대의 비밀에 가까워질수록 병원 관계자들의 행동은 더욱 수상하게 보입니다. 믿었던 동료 척에게까지 의문이 생기면서 어느 순간 이 섬 전체가 테디 한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무대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셔터 아일랜드의 재미는 단순히 사라진 환자를 찾는 데 있지 않습니다.

테디가 보고 있는 것을 관객도 그대로 믿어도 되는가라는 의심이 생기는 순간부터 이 영화는 전혀 다른 미스터리가 됩니다.


가짜 수사

제가 셔터 아일랜드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사가 어쩌면 처음부터 진짜 수사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처음 볼 때 관객은 자연스럽게 테디의 편에 섭니다.

병원 사람들은 수상하고,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며, 출입을 막는 장소까지 있습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정보만 따라가면 이곳에서 거대한 음모가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결말을 알고 다시 보면 똑같은 장면이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병원 관계자들이 테디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도 그렇습니다.

첫 관람에서는 무언가를 숨기는 사람들처럼 보였지만, 두 번째 관람에서는 정해진 상황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특히 코울리 박사의 태도가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테디의 수사를 방해하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인물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결말을 알고 보면 그의 말에는 적대감보다 설득과 기다림이 더 많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셔터 아일랜드가 일반적인 반전 영화와 조금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보통 반전 영화는 마지막에 숨겨두었던 정보를 꺼내 관객을 놀라게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중요한 정보를 완전히 감춰놓았다기보다 처음부터 관객 눈앞에 놓아두고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척의 행동도 대표적입니다. 처음에는 테디를 따라다니는 믿음직한 동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다시 보면 테디가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할 때마다 척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지는 순간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두 번째 관람에서는 테디보다 오히려 주변 인물들을 보게 됩니다.

누가 말을 망설이는지, 왜 특정 질문에서 표정이 달라지는지, 왜 테디를 강제로 제압하기보다 계속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는지를 살펴보면 처음 봤던 것과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관객에게 거짓말을 하기보다 주인공이 믿는 세계 안에 관객을 함께 가둬놓는 방법을 선택한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것이 셔터 아일랜드가 반전을 이미 알고 있어도 다시 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볼 이유

셔터 아일랜드의 가장 큰 매력은 결말을 알고 나서 영화의 앞부분을 다시 떠올리는 순간 시작됩니다.

첫 관람에서는 대체 이 병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가 궁금했다면, 두 번째 관람에서는 질문 자체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왜 테디의 말을 그렇게 쉽게 믿었을까?”

영화는 대부분의 장면을 테디의 시선에 붙여놓습니다.

관객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충분히 주기보다 그가 의심하면 함께 의심하고, 그가 두려워하면 함께 불안해지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의 반전이 단순한 이야기의 뒤집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뒤집히는 것은 사건의 진실뿐 아니라 지금까지 영화를 바라보던 관객 자신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쉽게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테디가 남기는 마지막 말은 그가 다시 망상 속으로 돌아간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이해하고도 다른 선택을 한 것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저는 후자의 가능성에 조금 더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셔터 아일랜드의 진짜 비극은 한 인간이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진실을 깨달았음에도 그 진실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사람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바라보면 제목 속 섬도 다르게 느껴집니다.

처음에는 셔터 아일랜드라는 공간 자체가 사람을 가두는 감옥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테디를 가장 단단하게 가두고 있었던 것은 철문이나 바다가 아니라 어쩌면 자신의 기억과

죄책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결말을 아는 것이 오히려 두 번째 관람의 시작이 되는 작품입니다.

이미 셔터 아일랜드를 본 분이라면 이번에는 테디보다 척과 코울리 박사의 표정과 대사를 중심으로 다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장면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반전이 강한 미스터리 영화로 기억했지만, 다시 보고 난 뒤에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셔터 아일랜드는 단순히 관객을 속이는 영화가 아니라,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진실 앞에서 어떤 현실을 선택하는가를

묻는 영화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질문 때문에, 결말을 알고도 다시 볼 이유가 충분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