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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잘못

《끝까지 간다》를 다시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배우는 역시 이선균입니다. 저는 이선균이라는 배우를 참 좋아했습니다. 특유의 목소리도 좋았고, 힘을 주지 않는 것 같은데도 인물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연기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재미와는 별개로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영화 속 고건수는 처음부터 정의롭고 반듯한 경찰은 아닙니다. 어머니의 장례식 날 감찰반의 수사까지 받게 되고, 정신없이 차를 몰고 가다가 사람을 치는 사고를 냅니다. 여기 까지라면 끔찍하지만 한순간의 사고입니다. 문제는 바로 그다음부터 시작됩니다.

건수는 신고하고 책임지는 대신 사고를 감추는 쪽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선택 때문에 다음 선택은 더 나빠집니다. 시신을 숨기고, 거짓말을 하고, 들키지 않기 위해 또 다른 행동을 합니다. 영화를 보는 사람은 그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건수가 이번에는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며 조마조마하게 보게 됩니다. 이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크든 작든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이미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다음 선택이 어쩌면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처음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워 덮으려는 순간, 그 잘못보다 훨씬 큰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끝까지 간다》는 그 과정을 무겁게 가르치려 들지 않고 정신없이 몰아붙이는 이야기 속에서 보여줍니다. 그래서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하게 현실적인 영화였습니다.


잘못된 선택의 연속

건수에게는 이상할 정도로 일이 계속 꼬입니다. 하나를 겨우 해결했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나고, 이제 끝났다고 안심하는 순간 더 큰 위기가 기다립니다. 특히 자신이 저지른 일을 누군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 영화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건수는 자신이 비밀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비밀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끌려다니게 됩니다.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했다면 겪지 않았을 일들이 이제는 자신의 힘으로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립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이 잘못을 숨길 때 왜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하나만 감추면 끝날 것 같습니다. 이것만 넘어가면 다시 원래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짓말 하나를 지키려면 또 다른 거짓말이 필요하고, 그 거짓말을 들키지 않으려면 다시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결국 처음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곳까지 가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건수가 단순히 운이 지독하게 없는 사람처럼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분명 시작은 우연한 사고였지만 그다음부터는 자신의 선택이었습니다. 우연히 벌어진 일과 내가 선택한 행동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막상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정말 처음부터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두려움 때문에 순간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고, 이미 늦었다고 생각해서 더 깊이 들어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건수에게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계속 보게 됩니다. 영화 속 황당한 사건들이 남의 이야기 같으면서도, ‘한 번만 숨기면 괜찮겠지’라는 사람의 마음만큼은 낯설지 않기 때문입니다.


운명처럼 꼬이는 하루

《끝까지 간다》를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까지 듭니다. 사람에게 정말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까? 하필 그날 사고가 나고, 하필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고, 하필 건수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하나만 비껴갔어도 이렇게까지 인생이 꼬이지 않았을 것 같은 일들이 이상할 정도로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건수에게 오늘 하루는 도대체 왜 이러나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운명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것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고 뒤에 어떤 행동을 할지는 건수의 선택이었습니다. 만약 첫 순간에 멈춰서 책임을 졌다면 그의 인생은 힘들어졌겠지만 적어도 영화에서처럼 끝없이 더 깊은 수렁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일이 분명히 있고, 아무리 조심해도 피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순간을 두고 운명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운명이 어떤 사건을 내 앞에 가져다 놓는다고 해도 그다음 길까지 전부 결정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끝까지 간다》가 단순히 경찰이 위기를 빠져나가는 범죄영화로만 기억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저걸 어떻게 빠져나가지?’가 궁금해서 보는데, 끝나고 나면 오히려 ‘처음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가 남습니다. 한 번의 잘못이 인생 전체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 뒤에 우리가 어떤 선택을 계속하느냐가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이 영화를 떠올리면 이선균이라는 배우 때문에 또 다른 감정도 남습니다. 영화 속 인물의 선택과 배우의 실제 삶을 연결해서 판단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좋아했던 배우의 영화를 다시 보면서, 사람의 인생은 정말 우리가 예상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끝까지 간다》라는 제목이 예전보다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는 것이 영화 속 건수의 하루만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마찬가지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