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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화진
넷플릭스 오리지널 《참교육》은 교권이 무너지고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힘을 갖게 된 학교에 교권보호국이라는 조직이 개입하면서 시작되는 학원 액션 드라마입니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김무열이 연기하는 교권보호국 감독관 나화진입니다.
특전사 출신인 나화진은 학교폭력과 교권 침해가 발생한 학교에 직접 투입돼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로잡아 갑니다.
처음 보면 나화진의 매력은 분명합니다.
피해 학생을 괴롭히던 가해자들이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를 만나 제압당하는 장면은 답답했던 상황을 한꺼번에 뒤집으며 강한 통쾌함을 줍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인물을 보면서 다른 질문도 생겼습니다.
나화진처럼 강한 사람이 나타나야만 학교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과연 정상적인 교육 시스템일까요.
학교폭력을 다룬 작품에서는 흔히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반격하는 순간을 기다리게 됩니다.
하지만 《참교육》은 피해자가 직접 복수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국가기관에 소속된 성인이 학교에 들어가 강제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다릅니다.
개인의 복수가 아니라 공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이 힘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화진의 행동은 통쾌하면서도 동시에 불편한 질문을 남깁니다.
어디까지가 교육이고 어디서부터 응징일까요.
저는 이 질문이 나화진을 단순한 액션 히어로보다 흥미로운 인물로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나화진은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게 책임을 묻지만, 모든 가해자를 처음부터 변화할 가능성이 없는 악인으로만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잘못에는 대가가 필요하지만 처벌만으로 끝내는 것이 정말 교육인지도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화진에게 중요한 것은 싸움을 얼마나 잘하느냐보다 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힘을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는가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힘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임한림과 봉근대 등 다른 교권보호국 감독관들이 합류하면서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한 명의 영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사건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생깁니다.
결국 나화진의 주먹이 시청자에게 통쾌함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 주먹이 필요하지 않은 학교를 만드는 것이 진짜 참 교육 아닐까라는 생각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사이다 전개
《참교육》의 가장 강한 장르적 무기는 역시 사이다입니다.
학교폭력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힘 있는 부모가 사건을 덮으려 할 때 교권보호국이 등장해 상황을 뒤집습니다.
현실에서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일수록 드라마 속 즉각적인 해결은 더 큰 통쾌함을 줍니다.
그런데 저는 이 사이다가 왜 이렇게 강하게 느껴지는지가 더 흥미로웠습니다.
아마 액션이 화려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현실에서 학교폭력 사건은 증거와 조사, 학교와 학부모의 이해관계, 절차와 책임 문제가 복잡하게 얽힙니다.
피해자에게는 그 과정 자체가 또 다른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반면 드라마는 이 복잡한 시간을 과감하게 줄입니다.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교권보호국의 개입으로 빠르게 뒤집힙니다.
현실에서 답답하게 느꼈던 절차가 사라진 자리에 즉각적인 정의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참교육》의 사이다를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 현실에서 쉽게 얻기 어려운 정의에 대한 판타지로 보는 편이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서 작품의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됩니다.
빠르게 해결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더 큰 권한을 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강한 권한은 항상 올바르게 사용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학교폭력이 단순히 몇몇 나쁜 학생 때문이라면 가해자만 처벌하면 끝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와 부모, 권력과 제도가 잘못을 알고도 외면한다면 문제는 개인을 넘어 구조로 확장됩니다.
그렇게 보면 이 작품의 진짜 적은 특정 학생 한 명이라기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움직이지 않는 시스템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사이다 장면 자체보다 그다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해자를 응징했다고 피해 학생의 상처가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을 처벌했다고 학교 분위기 전체가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응징은 사건을 멈출 수는 있어도 그 이후의 학교까지 자동으로 바꿔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참교육》을 볼 때 얼마나 세게 혼내주는가 보다 그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가까지 바라보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통쾌함은 순간이지만 교육과 회복은 그 이후부터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의 기준
《참교육》이 가장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지점은 결국 힘을 누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가해자를 응징하는 순간에는 나화진의 편에 서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권한이 계속 커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처벌할 때는 통쾌했던 힘이 언젠가 잘못된 판단에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람이 사용하는 강한 힘이라면 언제나 정의로운가.
저는 이 질문이 이 작품을 단순한 학원 액션물에서 조금 더 복잡한 이야기로 만듭니다.
청소년의 잘못을 어디까지 책임지게 해야 하는지도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행동을 용서할 수도 없지만, 아직 성장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처벌과 교육 사이에서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둘 것인가는 현실에서도 간단히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교육》을 현실적인 교육 해결책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기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 대신 개입한다면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이야기로 보는 편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강제력은 빠른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빠른 결과가 항상 좋은 결과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진짜 교육은 잘못한 사람을 겁먹게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해하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게 만드는 데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피해 학생 역시 단순히 구조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다시 자신의 일상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제목인 《참교육》도 상당히 도발적으로 느껴집니다.
인터넷에서 흔히 쓰이는 참 교육은 잘못한 사람을 통쾌하게 응징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곤 합니다.
하지만 원래 교육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응징과 변화 중 어느 쪽이 진짜 참 교육일까요..
저는 이 질문을 가지고 보면 나화진의 행동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주먹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결과는 그의 주먹이 계속 필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그런 방식이 필요하지 않은 학교가 되는 것일 것입니다.
결국 《참교육》의 흥미로운 지점은 나쁜 학생을 얼마나 시원하게 혼내주는가에만 있지 않습니다.
정의를 위해 강한 힘을 사용할 때 누가 기준을 정하고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까지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단순한 사이다 액션보다 이런 질문을 남기는 드라마로 보고 싶습니다.
잘못한 사람을 강하게 처벌하는 것이 정의일까요, 아니면 다시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바꾸는 것까지가 정의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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