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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크리스는 여자친구 로즈와 사귄 지 몇 개월 된 사진작가입니다.

어느 주말, 두 사람은 로즈의 부모님이 사는 교외의 저택을 방문하기로 합니다. 크리스는 자신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로즈의 부모님이 알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하지만 로즈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그를 안심시킵니다.

막상 도착한 저택에서도 크리스가 걱정했던 노골적인 거부는 없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로즈의 부모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크리스를 반깁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얼마나 편견 없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려는 듯

오바마에 관한 이야기까지 꺼냅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한 배려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크리스는 설명하기 힘든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저택에서 일하는 흑인 가사도우미와 정원사의 행동은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로즈 가족의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크리스를 평범한 손님처럼 대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그의 몸과 인종에 관심을 보입니다.

무례하다고 단정하기에는 친절하고, 친절하다고 받아들이기에는 어딘가 불편합니다.

바로 이 애매한 감정이 겟 아웃의 공포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던 중 크리스는 로즈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최면에 빠집니다.

의식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깊은 어둠 속으로 추락하고, 그곳에서 크리스는 현실을

멀리 떨어진 화면처럼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싱크 플레이스'입니다.

이후 저택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더욱 이상해지고, 크리스는 자신이 단순히 여자친구의 가족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친구 로드에게 상황을 알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집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듭니다.

그리고 크리스가 자신에게 쏟아졌던 친절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순간, 영화는 처음과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냅니다.


친절이라는 공포

겟 아웃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독특했던 점은 악인이 쉽게 악인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대놓고 그를 모욕하거나 쫓아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칭찬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면 그 칭찬에는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크리스가 어떤 사진을 찍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것보다 흑인의 신체적 능력이나 특징에

더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겉으로는 호의인데 크리스를 한 명의 개인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저는 바로 이 모순이 겟 아웃의 가장 무서운 부분이라고 느꼈습니다.

사람을 싫어하는 것만 편견이 아니라, 한 사람을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의 특징만으로 바라보는 것 역시 편견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즈의 아버지가 자신이 오바마를 지지했다는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처음에는 크리스를 편하게 해 주려는 어색한 농담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다시 생각하면 그 말은 크리스를 위한 말이라기보다 '나는 편견 없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런 순간들입니다.

대놓고 나쁜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크리스조차 자신의 불편함을 쉽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상대는 계속 웃고 있는데 혼자 불쾌해하면 자신이 예민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상황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의 공포가 괴물이나 잔혹한 장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불편해해도 되는 상황인가?'

라는 크리스의 망설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싱크 플레이스 역시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단순한 최면 장면 이상으로 다가옵니다.

크리스는 모든 것을 보고 듣지만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몸에서조차 주도권을 빼앗긴 채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상황을 바라보기만 해야 합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공간이지만, 역설적으로 크리스가 영화 내내 느끼던 무력감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습니다.

대니얼 칼루야가 눈물을 흘리면서도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그리고 결말을 알고 다시 보면 로즈 역시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처음에는 불편한 상황에서 크리스의 편을 들어주는 가장 든든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관객 역시 크리스와 함께

로즈를 믿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관람에서는 그녀의 말과 표정 하나하나를 의심하며 보게 됩니다.

저는 겟 아웃이 반전을 숨긴 영화라기보다 관객에게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를 일부러 잘못 판단하게 만드는 영화에 더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입소문 기적

겟 아웃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았고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저예산 공포 영화가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 작품입니다.

국내 개봉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받았던 영화라기보다 해외에서 먼저 화제가 되면서 국내 관객들의

관심도 빠르게 커졌고, 정식 개봉 이후에도 입소문을 타며 흥행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단순히 반전이 강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군가는 싱크 플레이스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로즈의 행동을 처음부터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공포영화인데 무서웠다는 감상만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야기할 거리가 남습니다.

저 역시 처음 볼 때는 크리스가 이 이상한 집에서 어떻게 빠져나갈지만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결말을 알고 다시 보니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말과 표정이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왜 저 말을 했을까, 왜 저 순간에 웃었을까, 그리고 크리스는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왜 바로 그곳을 떠나지 못했을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장면들이 두 번째 관람에서는 하나씩 다른 의미로 연결됩니다. 그래서 겟 아웃

반전을 알고 나면 재미가 사라지는 영화가 아니라, 반전을 알고 난 뒤 또 다른 영화가 시작되는 작품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제목인 Get Out도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단순히 '그 집에서 도망쳐라'라는 의미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크리스가

빠져나와야 하는 것은 물리적인 공간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부여한 이미지와 역할이기도 합니다.

친절 뒤에 숨겨진 진짜 얼굴을 발견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으신 분이라면, 겟 아웃만큼 잘 짜인 공포 영화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우리가 무심코 주고받는 친절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상대를 진심으로 존중해서 건네는

친절인지, 내가 가진 기준과 선입견 안에서 상대를 바라보며 건네는 친절인지 말입니다.

그만큼 겟 아웃은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불편함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