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복수《악마를 보았다》는 처음부터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장경철이 수현의 약혼녀를 살해하면서 시작되는 사건부터 너무 잔인하고, 최민식이 연기한 장경철은 쉽게 이해하거나 동정할 여지가 거의 없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수현이 이 사람을 찾아내서 제대로 벌을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저도 원래 영화에서는 나쁜 사람이 결국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권선징악의 결말을 좋아하는 편이라 처음에는 수현의 복수가 어디까지 갈지 궁금했습니다.그런데 수현이 선택한 복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식과 다릅니다. 장경철을 찾아내 바로 끝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준 뒤 풀어주고, 다시 찾아가 고통을 주는 일을 반복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잔인하..
한 번의 잘못《끝까지 간다》를 다시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배우는 역시 이선균입니다. 저는 이선균이라는 배우를 참 좋아했습니다. 특유의 목소리도 좋았고, 힘을 주지 않는 것 같은데도 인물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연기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재미와는 별개로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영화 속 고건수는 처음부터 정의롭고 반듯한 경찰은 아닙니다. 어머니의 장례식 날 감찰반의 수사까지 받게 되고, 정신없이 차를 몰고 가다가 사람을 치는 사고를 냅니다. 여기 까지라면 끔찍하지만 한순간의 사고입니다. 문제는 바로 그다음부터 시작됩니다.건수는 신고하고 책임지는 대신 사고를 감추는 쪽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선택 때문에 다음 선택은 더 나빠집니다. 시신을 숨기고, 거짓말을 하고, ..
두 배우의 연기 대결맷 데이먼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가 좋아하는 두 배우가 한 영화에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디파티드는 보기 전부터 반은 성공한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스타 둘을 한꺼번에 본다는 재미보다 훨씬 진한 게 남았습니다. 두 사람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숨 막히는 긴장을 만들어내고 있었거든요.디카프리오가 맡은 빌리 코스티건은 경찰인데 범죄조직에 잠입해 범죄자로 삽니다. 맷 데이먼이 맡은 콜린 설리번은 경찰 조직에서 인정받는 엘리트인데, 실은 프랭크 코스텔로에게 정보를 넘기는 조직의 첩자입니다. 경찰이면서 범죄자처럼 살아야 하는 남자와, 범죄자 편이면서 경찰처럼 살아야 하는 남자. 설정만 들어도 두 사람의 얼굴이 궁금해집니다.저는 특히 디카프리오의 불안이 좋았습니다. 언제 정체가 들..
용서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밀양》에서 신애는 남편을 잃은 뒤 아들 준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옵니다. 새로운 곳에서 피아노 학원을 열고 다시 살아보려 하지만, 그곳에서 또다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습니다. 아들이 유괴된 뒤 결국 죽은 채 발견된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아이를 잃는 사건 자체도 끔찍했지만, 그 이후 신애가 범인을 만나러 가는 과정이 훨씬 더 강하게 남았습니다. 신애는 모든 것이 무너진 뒤 종교에 기대기 시작하고, 자신도 조금씩 평안을 찾았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교도소에 있는 범인을 직접 찾아가 용서하겠다고 마음먹습니다.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신애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아이를 죽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 나라면 절대 하지 못할 것 같..
하정우의 소름 끼친 연기제가 《추격자》를 처음 봤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잔인한 장면도, 쫓고 쫓기는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하정우라는 배우였습니다. 당시 저는 하정우라는 배우를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았는데, 영화를 보는 동안 ‘연기를 정말 잘한다’는 생각보다 저 배우가 진짜 저런 사람 같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표정과 눈빛, 말투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연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순간순간 잊게 만들 정도였습니다.하정우가 연기한 지영민이 특히 소름 끼쳤던 이유는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 보는 살인마의 모습과 조금 달랐기 때문입니다. 무섭게 눈을 부릅뜨거나 광기 어린 표정을 계속 보여주는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입니다. 자신이 한 일을 이야기할 때조차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고,..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충격《마더》는 2009년에 개봉한 영화인데도 지금 다시 봐도 이상할 만큼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한국 영화를 다시 보다 보면 당시의 말투나 화면, 연출 때문에 세월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는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서늘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아들 도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엄마가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그런데 영화를 따라갈수록 범인을 찾는 과정보다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더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저 역시 도준이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생각했고, 엄마가 어떻게 진실을 밝혀낼지가 궁금했습니다.원빈의 연기도 정말 좋았습니다. 잘생긴 배우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도준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