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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의 소름 끼친 연기

제가 추격자를 처음 봤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잔인한 장면도, 쫓고 쫓기는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하정우라는 배우였습니다. 당시 저는 하정우라는 배우를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았는데, 영화를 보는 동안 연기를 정말 잘한다는 생각보다 저 배우가 진짜 저런 사람 같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표정과 눈빛, 말투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연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순간순간 잊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하정우가 연기한 지영민이 특히 소름 끼쳤던 이유는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 보는 살인마의 모습과 조금 달랐기 때문입니다. 무섭게 눈을 부릅뜨거나 광기 어린 표정을 계속 보여주는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입니다. 자신이 한 일을 이야기할 때조차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고,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이 자신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행동합니다. 저는 그 무덤덤함이 잔혹한 표정보다 훨씬 무서웠습니다.

영화 속 살인 장면 이후에 이어지는 행동들도 그랬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끔찍함을 느낄 일을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을까. 저는 영화를 보면서 범인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보다 저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지금 무슨 생각이 돌아가고 있을까?’가 더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영화를 다 보고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하정우의 얼굴과 무표정한 모습이 더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저는 배우가 악역을 무섭게 연기하는 것과, 관객에게 정말 저런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불안감을 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추격자에서 하정우는 후자였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 영화는 범죄 스릴러이기 전에 하정우라는 배우를 처음 발견하고 소름 끼쳤던 영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죄책감 없는 살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추격자를 보고 난 뒤 제가 가장 오래 생각했던 것은 의외로 범인을 잡는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정말 다른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심한 말을 하고 난 뒤에도 마음에 걸릴 때가 있고, 작은 잘못 하나 때문에 며칠씩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그 이후의 끔찍한 일들까지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저는 그 감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감정과 행동이 결국 뇌의 작용과 연결되어 있다면,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감정은 보통 사람과 정말 다른 것인지도 궁금했습니다. 두려움이나 공감, 죄책감을 느끼는 방식 자체가 다른 것인지, 아니면 그런 감정이 있어도 무시해 버리는 것인지 말입니다. 다만 영화를 보고 특정 인물에게 의학적인 진단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현실의 강력범죄 역시 한 가지 성격이나 뇌의 특징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추격자가 지영민에게 친절한 설명을 붙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서웠습니다. 불우한 과거를 길게 보여주면서 이래서 이런 사람이 됐다고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고, 관객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공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저 눈앞에서 끔찍한 행동을 하고 너무나 태연하게 존재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잔혹한 범죄 자체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 행동을 한 사람의 마음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그것이 더 큰 공포일 수 있습니다. 저에게 추격자의 지영민이 그랬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억지로 이해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인물이 훨씬 불편하고 무섭게 남았습니다.


다시 봐도 무서운 이유

추격자2008년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다시 봐도 스릴러 영화로서 크게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말과 범인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데도 긴장되는 장면들이 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보통 범죄 스릴러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재미가 생기지만, 추격자는 비교적 일찍 범인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런데도 긴장감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관객이 궁금해하는 것이 누가 범인인가에서 과연 이번에는 막을 수 있을까로 바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미진을 둘러싼 상황은 보고 있으면 정말 답답합니다.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누군가 한 번만 제대로 움직였더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 같은 순간들이 계속 지나갑니다. 관객은 위험을 알고 있는데 영화 속 사람들은 그만큼 알지 못합니다. 저는 그 시간차 때문에 웬만한 반전보다 더 큰 긴장감을 느꼈습니다.

김윤석이 연기한 중호 역시 처음부터 정의로운 영웅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 때문에 사람을 찾아 나섰던 인물이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점점 필사적으로 변해갑니다. 그래서 영화는 선한 경찰과 악한 범인의 단순한 대결처럼 흘러가지 않습니다. 부족하고 거칠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뒤엉킨 상태에서 시간만 계속 흘러갑니다. 저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영화가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다시 봐도 가장 강하게 남는 것은 역시 하정우의 연기입니다. 지금은 너무 유명한 배우가 됐지만, 제가 처음 추격자를 봤던 당시에는 처음 보는 배우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더 강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배우 하정우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지영민이라는 사람을 우연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요.

사람을 죽인 사람이 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을까. 정말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 걸까.

저는 추격자를 보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겠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영화가 아직도 무서운 것 같습니다. 괴물처럼 생긴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말하고 걸어 다니는 사람의 마음을 끝내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저에게 추격자는 바로 그 공포를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준 한국 스릴러 중 하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