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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공포

호컴(Hokum)은 아일랜드 출신 다미안 맥카시 감독이 연출한 포크 호러 영화입니다.

다미안 맥카시는 경고오디티에서 갑작스러운 자극보다 침묵과 공간, 인물의 심리를 이용해 천천히 불안을 키우는 공포를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저는 호컴역시 무엇이 나타날까를 기다리는 영화라기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조차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점에 먼저 눈길이 갔습니다.

이야기는 베스트셀러 작가 옴 바우만이 세상을 떠난 부모의 유골을 안치하기 위해 아일랜드 깊은 숲 속의 외딴 호텔을 찾으면서 시작됩니다.

공교롭게도 이곳은 부모가 신혼여행을 보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부모의 흔적을 찾아온 공간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호텔은 추억을 되새기는 장소가 아니라 옴이 알지 못했던 과거와 마주하는 공간으로 변해갑니다.

특히 호텔에는 누구도 열어서는 안 된다는 객실이 있습니다.

오래전 마녀가 사람들을 지하실로 끌고 갔다는 전설 때문에 봉인된 허니문 스위트룸입니다.

저는 이 설정에서 마녀가 정말 존재하는가보다 왜 사람은 열지 말라는 문을 더 열어보고 싶어 하는가가 더 흥미로웠습니다.

공포영화에는 유난히 금지된 방과 들어가지 말라는 지하실, 읽지 말라는 책이 자주 등장합니다.

관객은 그곳에 들어가면 분명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을 알면서도 결국 주인공이 문을 열기를 기다립니다.

어쩌면 공포영화가 이용하는 가장 오래된 인간의 본능은 두려움보다 호기심인지도 모릅니다.

옴 역시 호텔의 괴담을 처음부터 믿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환영과 기이한 사건이 이어지면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바로 이 지점에서 호텔이라는 공간이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호텔은 원래 낯선 사람들이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장소입니다.

내 집처럼 익숙하지 않고, 이전에 누가 그 방을 사용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런 공간이 깊은 숲속에 고립돼 있다는 사실만으로 평범한 복도와 닫힌 문 하나까지 불길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호텔 직원 피오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서 오래된 전설은 더 이상 단순한 괴담으로만 넘기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호컴의 공포는 무서운 존재가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보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공간에 혼자 남겨지는 순간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 아니라,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서운 것입니다.


믿음의 함정

제목인 Hokum은 허튼소리나 터무니없는 이야기, 사람을 현혹하는 이야기를 뜻합니다.

저는 이 제목이 영화의 공포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처럼 느껴집니다.

영화 속에는 오래된 마녀 전설이 등장하지만 옴은 처음부터 그것을 쉽게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믿지 않았던 이야기가 눈앞에서 현실처럼 벌어지기 시작한다면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믿어야 할까요.

처음 이상한 소리를 들었을 때는 오래된 건물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를 봤다면 피곤해서 잘못 본 것이라고 넘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기 시작하면 결국 자신의 합리적인 판단과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이 과정이 호컴의 가장 재미있는 공포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역시 옴과 비슷한 위치에 놓입니다.

처음에는 호텔의 전설을 공포영화니까 당연히 나오는 설정 정도로 받아들이지만, 사건이 이어질수록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만들어진 이야기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허니문 스위트룸도 단순히 귀신이 나오는 방이라기보다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을 결국 확인하게 되는 공간처럼 보입니다.

공포영화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면 오히려 무서움이 줄어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괴물의 얼굴과 정체, 행동 방식까지 알고 나면 그것도 결국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대비할 방법조차 없습니다.

저는 다미안 맥카시 감독의 공포가 바로 이 지점에서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이 닫혀 있는 시간, 아무도 없는 복도, 갑자기 사라지는 소리처럼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순간을 길게 끌면서 관객이 스스로 공포를 만들어내게 합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정말 무서운 존재가 무엇인지보다 관객의 머릿속에서 무엇을 상상하게 만드는지가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호컴은 괴담을 믿게 만드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끝까지 그것을 의심하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이에 놓인 불확실성이 사람을 가장 불편하게 만듭니다.

내가 직접 본 것이라면 정말 사실이라고 믿어도 되는 걸까요.


이야기와 현실의 경계

주인공 옴 바우만이 작가라는 설정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오래된 전설이 남아 있는 호텔에 들어가 자신이 설명할 수 없는 일을 경험합니다.

평생 허구를 만들어온 사람이 어느 순간 허구처럼 보이는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옴에게 벌어지는 일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그가 경험하는 것은 실제 초자연적인 현상일까요.

아니면 상실과 기억, 두려움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이야기일까요.

저는 이 경계를 흔드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옴이 부모의 유골을 안치하기 위해 부모가 신혼여행을 보냈던 장소를 찾았다는 설정도 의미가 있습니다.

부모에게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장소가 아들에게는 부모와 마지막으로 작별하기 위해 찾아온 장소가 됩니다.

누군가에게 시작의 공간이었던 곳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별의 공간이 되는 셈입니다.

그곳에 죽은 자와 오래된 전설에 관한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호텔은 단순한 공포영화의 무대보다 기억과 상실이 뒤엉킨 장소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호컴을 단순히 마녀가 등장하는 호텔 공포영화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옴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이 호텔 안의 존재인지, 아니면 부모와 관련된 기억과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과거인지도 함께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작가라는 직업도 여기에서 다시 의미를 갖습니다.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마주했을 때 그 일을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보다 먼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설명할 이야기가 필요해지는 것입니다.

옴 역시 자신이 경험하는 일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하려 하지만, 문제는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결국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봉인된 객실 안에 무엇이 있는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문을 열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상상과, 문을 연 뒤에도 자신이 본 것이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가 더 무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호컴이 남기는 질문도 공포의 정체보다 이쪽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진실을 찾는 걸까요, 아니면 견딜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믿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