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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970년대 초, 브라질 군사독재가 극에 달하던 시기입니다.

 

리우데자네이루 바닷가 근처, 파이바 가족의 집은 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전직 연방 하원의 원인 아버지 후벤스와 어머니 에우니시, 다섯 아이들이 이웃과 친구들을 스스럼없이 맞이하는 화목한 가정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남자들이 집으로 들이닥칩니다. 그들은 아버지 후벤스를 데려가고, 그는 그 후로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내 에우니시는 남편이 어디로, 왜 끌려갔는지를 묻습니다. 하지만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브라질 작가 마르셀루 후벤스 파이바가 2015년에 쓴 동명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합니다.

 

그가 바로 이 가족의 아들이며, 자신의 가족이 실제로 겪었던 일을 담담하게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남편이자 아버지가 사라진 뒤, 에우니시는 다섯 아이를 홀로 키우며 남편의 행방을 수십 년간 추적합니다.

 

저는 이 설정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남편의 실종 자체보다도 아무도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고가 났다면 슬퍼할 수도 있고 죽음을 확인했다면 애도라도 할 수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사람을

기다리는 가족에게는 끝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에우니시가 견뎌야 하는 시간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국가가 대답하지 않는 세월 전체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훗날 변호사가 되어 원주민 인권 운동에까지 헌신하게 되는 그녀의 삶은, 이 영화가 단순한 실종 사건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걸 짐작하게 합니다.

 

한 가족의 평범했던 일상이 국가의 폭력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고, 또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지를 지켜보는 이야기입니다.

 

실화라는 무게가 이 이야기를 더 묵직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단순한 정치 드라마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다룬 초상화로 보고 싶습니다.


 

두 세대의 얼굴

제가 이 영화의 캐스팅을 보고 가장 먼저 눈길이 갔던 지점은, 에우니시 역을 두 명의 배우가 나눠 맡았다는 사실입니다.

 

장년의 에우니시는 페르난다 토레스가, 노년의 에우니시는 페르난다 몬테네그로가 연기합니다. 그런데 이 두 배우는 실제로 모녀 사이입니다.

 

저는 이 캐스팅이 단순한 우연이나 화제성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 몬테네그로는 월터 살레스 감독의 대표작 중앙역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입니다.

 

즉 감독은 26년 전 자신과 함께 작업했던 배우의 딸에게 같은 인물의 젊은 시절을 맡기고, 그 어머니에게는 다시 그 인물의 노년을 맡긴 셈입니다. 저는 이 선택 자체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야기가 전승된다는 이 영화의 주제를 캐스팅으로 미리 완성해 놓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월터 살레스 감독은 중앙역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통해 브라질과 남미 민중의 삶을 다큐멘터리적인 리얼리즘으로

담아 온 감독입니다. 저는 그가 십이 년 만에 돌아온 극영화로, 다시 한번 브라질이라는 나라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사건 전개보다 한 가족의 일상이 서서히 무너져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따라가는 방식이라면, 저는 이 영화가 감정을 강요하기보다 관객 스스로 그 무게를 느끼게 만드는 쪽을 택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작품의 의미

아임 스틸 히어는 2024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고, 202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습니다.

 

페르난다 토레스는 이 작품으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국가와 시대를 초월해 이 정도로 고르게 인정받은 작품이라면, 그 이유가 단순히 소재의 무거움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영화가 감독의 전작들과 이 작품이 받아온 평가들을 살펴보며 한 가지 확신이 들었습니다. 정치적 폭력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삶을 지속해 나간 한 여성의 이야기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는 확신입니다.

 

국가의 폭력이 한 가족의 일상을 어떻게 침범하는지, 그리고 남겨진 사람은 그 이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특정 시대나 국가에 국한된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브라질 현지에서는 568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브라질 박스오피스 3위에 올랐는데, 예술영화로 분류되는 작품이 이 정도 흥행을 거둔 것도 이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봉 당시 군사정권 지지자들의 관람 방해 운동이 오히려 화제성을 키웠다는 뒷이야기도 이 영화가 지금까지도 얼마나 첨예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아임 스틸 히어는 왓챠에서 개별 대여 또는 구매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OTT 제공 여부는 변경될 수 있으니 시청 전 확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무거운 소재이지만 실제 인물의 삶을 다룬 만큼, 미리 원작 회고록이나 감독의 전작들을 찾아보고 보시면 훨씬 깊이 있게 감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