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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동화의 공포
《들쥐》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부터 어릴 적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손톱을 아무 데나 버리면 들쥐가 그것을 먹고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한다는 전래동화입니다. 어린 마음에는 나와 똑같이 생긴 무언가가 내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는 상상 자체가 꽤 오싹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는 바로 이 익숙한 공포를 현대의 이야기로 가져옵니다. 대인기피 성향으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던 소설가 문재는 어느 날 지문 인증에 실패하면서 이상한 일을 겪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존재가 자신의 이름과 삶을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는 이 설정이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옛이야기에서는 들쥐가 손톱을 먹고 사람으로 변했다면, 지금은 얼굴과 지문, 각종 인증 정보가 한 사람을 증명합니다.
그런데 그 증명마저 빼앗긴다면 나는 어떻게 내가 진짜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익숙한 전래동화 하나가 디지털 시대에는 전혀 다른 현실적인 공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들쥐》에 빠르게 몰입하게 만든 이유였습니다.
두 개의 얼굴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눈여겨본 것은 류준열의 1인 2 역입니다.
진짜 문재와 그의 삶을 빼앗은 들쥐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볼거리보다 더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얼굴이 같다고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투와 눈빛, 행동과 기억은 다릅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그 차이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무엇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야 할까요.
저는 이 설정을 보면서 우리가 누군가를 그 사람이라고 믿는 근거가 생각보다 불안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재에게 돈을 받아내려던 노자가 점차 그와 함께 들쥐를 쫓게 되는 관계도 흥미로웠습니다. 여기에 형사 순용까지 합류하면서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존재를 추적합니다.
저는 이 구도 때문에 이야기가 단순히 가짜를 잡아라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문재에게는 들쥐를 잡는 일이 범인을 잡는 것과 다릅니다.
자신의 얼굴을 한 다른 사람에게서 자기 인생을 되찾아야 하는 싸움입니다.
그래서 같은 얼굴을 한 두 사람을 볼수록 오히려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더 크게 남았습니다.
빼앗긴 정체성
저는 원래 익숙한 옛이야기를 현대적인 장르물로 바꾼 작품을 좋아합니다. 《들쥐》 역시 단순히 전래동화의 소재만 가져왔다면 흥미로운 설정 하나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나와 똑같은 존재라는 오래된 공포를 지금 시대의 신원 도용과 연결합니다.
우리는 얼굴과 지문, 휴대전화, 계정과 각종 인증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 모든 것을 가지고 내 이름으로 살아간다면 주변 사람들은 과연 누가 진짜인지 알아볼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이 귀신이나 괴물보다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문재가 원래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는 설정도 의미 있게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온 사람일수록 자신의 자리를 누군가 대신했을 때 그 차이를 알아봐 줄 사람 역시 적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들쥐 이야기가 무서웠던 이유는 나와 똑같이 생긴 존재가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들쥐》를 보고 나니 더 무서운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보다 더 자연스럽게 내 삶을 살아버리는 것.
저에게는 그 지점이 오래된 전래동화를 지금 다시 꺼내야 했던 가장 흥미로운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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