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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의 의미

몇 년 전 우연히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제목만 보고 잔잔한 노년 드라마인 줄 알았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완전히 다른 영화였습니다.

사냥을 나갔던 모스는 사막에서 마약 거래가 틀어진 현장을 발견하고 200만 달러가 든 돈가방을 챙깁니다. 그 순간부터 살인청부업자 안톤 시거의 추격이 시작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다시 봤지만 가장 강렬한 것은 역시 시거가 동전을 던져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는 장면입니다. 처음에는 캐릭터를 강렬하게 만드는 장치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이 동전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처럼 느껴졌습니다.

시거 앞에서는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삶과 죽음이 갈릴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모스 역시 우연히 돈가방을 발견하면서 모든 일이 시작됩니다. 행운처럼 찾아온 200만 달러가 동시에 불행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자신의 선택으로 만들어간다고 생각하지만, 그 선택 앞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우연이 얼마나 많이 놓여 있을까.

저는 몇 번을 다시 봐도 시거가 던지는 동전에서 이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보안관 벨

안톤 시거만큼 저에게 오래 남은 사람은 보안관 벨입니다.

벨은 영화 내내 사건을 쫓지만 우리가 범죄 영화에서 기대하는 영웅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보안관과 살인자가 결국 맞붙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는 그런 기대를 완전히 비껴갑니다.

벨은 끔찍한 사건을 계속 목격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방식으로는 지금의 폭력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여기서 노인은 단순히 나이 든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과 지혜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어왔던 벨 같은 사람으로도 읽혔습니다.

하지만 시거 같은 존재 앞에서는 경험도 지혜도 힘을 쓰지 못합니다.

코엔 형제의 파고역시 평범한 사람들이 어처구니없는 폭력에 휘말리는 이야기였지만 느낌은 달랐습니다. 파고가 부조리를 씁쓸한 유머와 함께 보여줬다면, 이 영화는 훨씬 건조하고 냉정합니다.

그래서 저는 벨이 시거를 쓰러뜨리지 못하는 것이 실패한 결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앞에 서 있는 한 사람.

오히려 그 모습이 이 영화의 제목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명 없는 결말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가장 당황했던 것은 마지막이었습니다.

기대했던 대결도, 시원한 복수도, 모든 사건을 정리해 주는 설명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이게 끝이라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몇 번 다시 보고 나서는 오히려 그 결말 때문에 이 영화를 더 좋아하게 됐습니다.

현실의 폭력과 상실에도 언제나 납득할 만한 이유나 완벽한 마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사라지고, 누군가는 살아남으며, 남은 사람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합니다.

영화 마지막에 벨이 아내에게 들려주는 꿈 이야기도 그래서 오래 남았습니다. 저에게는 평생 세상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이제 자신이 따라갈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시거가 아닌 벨의 이야기로 끝납니다.

저는 이 선택이야말로 이 영화가 평범한 추격 스릴러와 달라지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을까.

영화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안톤 시거라는 사람이 무서웠지만, 다시 볼수록 더 무서운 것은 우리가 세상을 완전히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생각 자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