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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삶

저는 이 영화의 설정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묘하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여든 살 노인의 몸으로 태어나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젊어지다가 마지막엔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는 남자의 이야기라니, 상상만으로도 아득해지는 소재였습니다.

1918년 뉴올리언스, 벤자민은 노인의 외모와 노인의 질병까지 갖고 태어납니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 분노한 아버지는 그를 양로원 현관 앞에 버리고, 벤자민은 그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나이 든 얼굴을 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납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그의 몸은 점점 젊어집니다.

열두 살이 되어 육십 대의 외모를 갖게 된 어느 날, 그는 양로원을 찾아온 어린 소녀 데이지를 만나 그녀의 눈동자를 잊지 못하게 됩니다. 이후 두 사람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나이가 얼추 비슷해지는 짧은 순간에 진짜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벤자민은 계속 젊어지고, 데이지는 계속 나이가 들어갑니다.

저는 이 스윗 스폿이라 불리는 짧은 시기가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눈부시면서도 아픈 구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나이가 우연히 겹쳐지는 그 찰나가, 결국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유일한 시간이라는 걸 관객도, 두 사람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장면들을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고, 자꾸 달력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핀처의 다른 얼굴

저는 이 영화의 감독이 데이비드 핀처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조금 의아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핀처 감독을 세븐이나 나를 찾아줘, 파이트클럽처럼 차갑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인간의 어두운 면을 파고드는 감독으로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벤자민 버튼은 그런 핀처의 얼굴과는 완전히 다른 온도를 보여줍니다. 잔혹한 사건이나 반전 대신, 시간과 사랑, 상실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는데도 저는 이 영화 특유의 정교한 만듦새에서 핀처 감독 특유의 손길을 계속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대별로 벤자민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늙고 젊어지는 특수분장과 시각효과는 지금 봐도 감탄스러운데, 이 영화가 아카데미 시각효과상과 분장상을 받은 것도 납득이 갑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감독이라는 존재가 특정 장르에 갇히지 않고 얼마나 다른 결의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지 새삼 생각하게 됐습니다. 브래드 피트는 나를 찾아줘가 아니라 세븐에서도 핀처와 함께했던 배우인데, 이번에는 폭력적인 형사가 아니라 시간을 거스르는 잔잔한 남자를 연기하며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렇게 같은 배우와 감독의 조합이 완전히 다른 색깔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사실 자체가, 좋은 협업이 반드시 한 가지 장르에만 갇힐 필요는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웠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핀처의 필모그래피를 다시 쭉 훑어보게 됐습니다.

 


다시 아이가 되는 인생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정말 많이 슬펐습니다. 단순히 벤자민과 데이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니 벤자민의 삶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과 너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벤자민은 다른 사람들과 반대로 늙은 몸으로 태어나 점점 어려집니다. 하지만 방향만 반대일 뿐 결국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돌아간다는 점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다시 아이가 된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젊을 때는 혼자 걷고, 일하고,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가지만 나이가 많이 들면 몸이 약해지고 기억도 흐려지면서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의 손길이 필요해집니다. 밥을 먹는 것부터 걷고 씻는 것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벤자민은 실제로 몸까지 어린아이가 되어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데이지가 점점 어려지는 벤자민을 돌보는 모습이 유난히 슬펐습니다. 한때 사랑했던 남자가 소년이 되고 아이가 되고, 결국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기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벤자민의 몸은 어려지는데 정신은 실제 나이를 따라 쇠퇴하고, 결국 데이지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는 설정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젊어지는 몸을 가졌다고 해서 시간까지 거꾸로 흐르는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데이지의 품에 안긴 갓난아기 벤자민이 마지막 순간 희미하게 미소 짓는 장면도 오래 남았습니다. 정말 데이지를 알아본 것인지, 그저 아기의 표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 장면 때문에 사람의 인생을 더 생각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아기로 태어나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기 시작하고, 긴 세월을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어른으로 지내다가, 다시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을 맞기도 합니다.

벤자민은 그 과정을 눈에 보이게 거꾸로 살아갔을 뿐,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시간이 거꾸로 흐르면 좋을까라는 생각보다 사람이 산다는 게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음도 붙잡을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시간에 머물 수도 없고, 기억조차 언젠가는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그 시간 동안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사랑했고, 또 누구의 품에서 마지막을 맞았는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판타지 영화라기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아주 이상한 방법으로 거꾸로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그 거꾸로 된 인생이 오히려 우리의 평범한 인생과 너무 닮아 있어서, 저는 더 슬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