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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프로그래머 칼렙은 회사 내부 이벤트에 당첨되어 일주일 동안 특별한 장소에 머물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곳은 도시와 완전히 떨어진 숲 속에 자리한 천재 개발자 네이든의 개인 연구소입니다.
네이든은 자신이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 에이바를 칼렙에게 소개하면서 한 가지 실험을 부탁합니다.
에이바와 직접 대화를 나누며 그녀가 정말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인지 판단해 달라는 것입니다.
칼렙은 매일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에이바와 대화를 나눕니다.
처음에는 과학적인 튜링 테스트처럼 보였던 만남이지만 두 사람의 대화가 반복되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집니다.
에이바는 칼렙에게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그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특히 연구소에 정전이 발생할 때마다 감시 시스템이 멈추는데, 그 순간 에이바는 칼렙에게 네이든을 믿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칼렙은 점점 에이바에게 동정과 호감을 느끼고, 반대로 네이든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 변화입니다.
유리벽 안에 갇혀 있는 에이바와 그녀를 통제하는 네이든을 보고 있으면 관객 역시 자연스럽게 에이바의 편에 서게 됩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바로 이 과정이 가장 영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칼렙이 에이바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 자체가 어쩌면 실험의 핵심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에이바가 얼마나 인간처럼 말하는가보다 인간인 칼렙이 그녀에게 얼마나 쉽게 감정을 느끼고 행동을 바꾸는지가
더 중요한 데이터였다고 생각하면 영화 전체가 다르게 보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관객도 포함됩니다.
우리는 칼렙보다 더 객관적인 위치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영화가 보여주는 정보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유리벽 안에 갇힌 에이바를 보면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술을 마시며 그녀를 통제하는 네이든을 보면 자연스럽게 가해자로 판단합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어느 편에 서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이미 한쪽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저는 엑스 마키나의 튜링 테스트가 화면 안에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에이바가 칼렙에게 얼마나 인간적으로 보이는지를 시험하는 동시에, 영화는 관객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상대에게 감정이 있다고 판단하는가, 그리고 그 판단은 얼마나 쉽게 조종될 수 있는가.
그렇게 보면 관객 역시 연구소 밖에서 실험을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또 하나의 피실험자가 됩니다.
갇힌 건 누구
엑스 마키나를 보고 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정말 시험대에 오른 존재가 누구였느냐는 것입니다.
표면적인 실험 대상은 분명 에이바입니다. 칼렙은 에이바가 단순히 프로그램된 대답을 하는 기계인지, 아니면 인간처럼
사고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존재인지 판단하기 위해 연구소에 왔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저는 이 관계가 정반대로 보입니다.
에이바가 시험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칼렙이 얼마나 쉽게 감정을 이입하고, 자신의 판단을 확신하며, 행동까지
바꿀 수 있는지를 시험받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칼렙은 자신이 합리적으로 판단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에이바의 표정과 말투, 불안해하는 모습에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판단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에이바가 거짓말을 하는가 보다 칼렙이 왜 그녀를 믿고 싶어 하는가입니다.
인간은 완벽하게 객관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호감을 느끼는 대상에게 더 쉽게 의미를 부여하고,
이미 내린 판단과 맞는 정보에 더 주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엑스 마키나가 인공지능의 지능보다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쉽게 해킹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컴퓨터를 뚫는 것만 해킹이 아니라 상대의 욕망과 외로움, 동정심을 이해하고 그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면 사람 역시
하나의 시스템처럼 조종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이든 역시 자유로운 인물처럼 보이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자신의 욕망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존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창조했다는 사실이 그 존재의 모든 생각과 행동까지 소유할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만드는 것과 소유하는 것은 같은 것인가라는 질문이 여기에서 생깁니다.
특히 네이든이 이전에 만든 인공지능 로봇들을 보관해놓은 장면은 이런 불편함을 더욱 크게 만듭니다.
실패한 실험체를 정리해둔 공간처럼 보이지만, 저는 그 장면이 단순한 AI 개발 이야기보다 타인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물건처럼 취급하는 관계에 대한 은유로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이 영화에는 여러 종류의 감옥이 존재합니다.
에이바는 유리벽 안에 갇혀 있고, 칼렙은 자신이 옳다는 확신과 감정에 갇혀 있으며, 네이든은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처럼 기계에서 인간이 탄생하는 이야기만이 아니라, 정작 인간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자유로운가를 묻는 영화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의 의미
엑스 마키나는 비교적 제한된 공간과 등장인물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만, 시각적으로는 전혀 작은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특히 에이바의 투명한 신체 구조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녀가 인간처럼 보이도록 완전히 숨기는 대신 내부의 기계 장치를 노출시킨 디자인 덕분에 관객은 처음부터 그녀가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히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은 에이바가 기계라는 사실을 모르고 속는 것이 아닙니다.
기계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녀의 표정과 말에 감정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인간처럼 보이는 외모가 중요한 것일까요, 아니면 상대에게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행동이 더 중요한 것일까요.
이 질문은 지금 인공지능 기술이 점점 자연스럽게 사람과 대화하는 시대가 되면서 더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저는 특히 자유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물리적인 공간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역시 아무런 유리벽 없이 살아가지만 직업, 돈, 관계, 사회의 기대, 타인의 평가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기준 속에서 행동합니다.
그래서 에이바의 유리벽은 단순한 감옥보다 훨씬 넓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벽은 깨고 나갈 수 있지만 타인의 시선과 기대는 어디까지 벗어날 수 있을까요.
에이바가 연구소를 떠난다고 해도 인간 사회에 들어가는 순간 또 다른 규칙과 평가 속에 놓일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영화가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를 뒤집는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인간이 에이바를 관찰합니다.
칼렙과 네이든은 그녀가 정말 생각하는 존재인지 판단하고, 관객 역시 에이바의 행동을 분석합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나갈수록 오히려 질문을 받는 쪽은 인간이 됩니다.
우리는 정말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환경과 감정, 다른 사람의 시선에 따라 움직이면서 그것을
자유라고 믿는 것인가.
그래서 엑스 마키나의 결말을 단순히 에이바가 자유를 얻었다거나 인간을 배신했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승리했는지가 아니라 자유로운 존재라고 부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문제입니다.
누군가의 명령을 받지 않는 것이 자유인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자유인지, 아니면 타인의 시선에서까지 벗어나야 진정한 자유인지에 따라 결말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영화가 인공지능을 무서운 존재로 보여주기 때문에 오래 기억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다른 존재를 소유하려 하고, 얼마나 쉽게 감정에 흔들리며, 자신은 자유롭다고 믿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에 지금 다시 봐도 흥미롭습니다.
결국 엑스 마키나를 보고 남는 질문은 에이바가 인간인지 아닌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에이바를 시험하던 인간들은 과연 자신들이 생각하는 만큼 자유롭고 합리적인 존재였을까요?.
저는 이 질문 때문에 이 영화가 단순한 AI 스릴러를 넘어 오래 곱씹어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엑스 마키나는 웨이브에서 스트리밍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대여와 구매 방식으로도 이용할 수 있으며, OTT 제공 여부는 시기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니 관람 전 한 번
더 확인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